-아래의 내용은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 정수일씨의 저서 “이슬람문명”에서 옮겼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전대의 맥을 이어 이슬람과의 만남이 그 성숙도를 더해갔다. 그러나 중·후기에는 여러 가지 주·객관적 요인으로 그 만남이 단절되다시피 하여 두 문명간의 만남과 교류에는 한때의 공백기가 생겨났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선초(鮮初)의 여러 사적에는 전대의 문헌기록과 마찬가지로 회회인(回回人, 무슬림)의 정착 내지는 사회활동과 지위에 관하여 나누어 언급돼 있다. 실록에 따르면, 1407년에 회회 사문(沙門 , 목사 격인 이맘)인 도로(都老)가 처자를 데리고 내조하자 태종은 집을 주어 살게 하고 그에게 여러 특전을 베풀었다. 그러던 태종이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왜인(倭人)과 회회인들의 녹을 줄이라고 하명했다. 회회인들의 녹을 줄여 국고를 충당했을 정도라면 그들의 수와 직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세종실록》에 의하면, 회회 노인(무슬림 원로)과 승도들은 그들 나름의 이색적인 복식을 하고 신년하례식이나 동지 망궐례(望闕禮) 같은 각종 궁정행사와 의식에 예를 갖춰 참석하곤 했다. 임금에 대한 무슬림들의 공식적 하례는 그들이 누린 사회적 위상과 이슬람 문화의 침투상을 여실히 반영한다.
이처럼 무슬림들은 조선초까지 그들 특유의 복장을 하고 이슬람식 궁정의례를 치렀으며, 불승들과 동등한 서열로 조정 하례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이미 한화(韓化)되어 여느 백성들과 다를 바 없어지자 세종대에는 무슬림들의 이방적 행태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슬람교는 전대와 마찬가지로 조정으로부터 공식적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무슬림들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초기 이슬람 문명과의 만남에서 특기할 사항은 이슬람의 과학기술 수용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슬람의 역법원리 도입이다. 원래 고려시대에는 당나라의 선명력(宣明曆)과 원나라의 수시력(隨時曆)을 채용했고, 공민왕대에는 다시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들여와 조선조 초기에도 계속 사용했다. 그러나 대통력도 조선의 현실과 맞지 않자 세종은 새로운 역법을 창제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하게 했고, 마침내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이라는 조선의 역법이 탄생했다. 이 역법은 효종 4년(1653)에 서양의 태음력인 시헌력(時憲曆)이 도입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중 《칠정산내편》은 대통력의 산법을 기초로 한 역법이고, 외편은 순태음력인 이슬람력의 원리를 도입하여 만든 것으로 가위 ‘조선의 이슬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역법은 이슬람력의 역원인 히지라(서력 622년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에게 메카를 떠나 이주하도록 명령하셨다. '히즈라'라고 하는 이 사건으로 그들은 메카를 떠나 북쪽으로 떨어진 메디나를 향하게 되며 이것이 이슬람력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며, 전래의 태양태음력에 따른 윤달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30태음년에 11일의 윤일을 두고 있다. 또한 분도법도 중국의 100진법이 아닌 이슬람의 60진법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칠정산외편》은 이슬람 역법의 기본원리와 특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데, 이는 문명교류의 전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역법과 관련 있는 천문기상학과 천문관측기기 제작에서도 이슬람 천문학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정비된 대소 간의(簡儀)나 혼천의(渾天儀), 해시계 앙부일영(仰釜日影), 물시계 자격루( 自擊漏), 태양과 별의 운행시간을 관측하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 여러 천문관측기기들은 원대에 중국에 도입된 이슬람 천문기기들과 구조나 기능에서 대동소이하다. 그 중 자격루에 맞먹는 소리나는 물시계가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미 8세기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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