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惠超)의 왕오천축국전
-아래의 내용은 정수일의 저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2004),”에서 발췌했습니다.-
대식국(아랍) (360쪽)
다시 파사국에서 북쪽으로 열흘을 가서 산으로 들어가면 대식국(大寔國, 아랍Arab)에 이른다. 대식국 왕은 본국에 살지 않고 소불림국(小拂臨國)에 가서 살기는 하는데, 소불림국을 쳐서 얻기 위해서는 소불림의 산 많은 섬에 가서도 산다. 처소로서는 대단히 견고해서 왕이 그렇게 한다.
이 땅에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모포가 나며 보물도 있다. 의상은 가는 모직으로 만든 헐렁한 적삼을 입고, 또 그 위에 한 장의 모직 천을 걸친다. 이것을 겉옷으로 한다. 왕과 백성의 의상은 한가지로 구별이 없다. 여자도 헐렁한 적삼을 입는다. 남자는 머리는 깎으나 수염은 그대로 두며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식사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한 그릇에서 먹는다.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도 들었으나 보기에 매우 흉하다. 자기 손으로 잡은 것을 먹어야 무한한 복을 얻는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고 하늘을 섬기나 불법을 알지 못한다. 이 나라 관행에는 무릎을 꿇고 절하는 법이 없다.
주:
9. “왕과 백성의 의상은 한가지로 구별이 없다”라든가, 모두가 식사할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한 그릇에서 먹는다”라는 것은 이슬람이 강조하는 평등과 형제애의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제2대 칼리파인 오마르가 644년 시찰차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남루한 옷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수행하던 그리스 주교 수프루니우스(Sophrunius)가 크게 감동하였다는 일화는 그 일례이다.
10. ‘저(筯)’가 본문에서 좀 희미하여 ‘근(筋)’자로 오인하거나(Y, 105;張, 108;李, 104), 동음동의어인 ‘저(箸, 젓가락)’자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저(筯)’저가 분명하다. 문제는 대식인(아랍인)들이 수저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유목 생활 유습으로 인해 아랍인들은 자고로 맨손(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관행이다. 간혹 국 같은 것을 먹기 위해 숟가락은 사용하나, 한 문명권 사람들처럼 젓가락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짐작하건대 혜초는 꼬치구이를 질기는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꼬챙이 같은 것을 젓가락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대식인들이 수저를 쓰는 것이 그에게는 ‘퍽 흉하게 보였던’ 것이다. ‘저(筯)’자는 육조시대에 나타난 글자로서, 돈황사본이나 당대의 「왕인구간류보결절운」에 의하면 이 글자는 통용자체(通用字體)로 일상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광운(廣韻)」, 「집운(集韻)」, 「대광익회본옥편」 등 송대 이후의 자전에 의하면 이 글자는 ‘저(箸)’자의 이체자(異體字)로서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글자가 아니다.
12. 이슬람교에서는 절대유일신 알라만을 신봉한다. 그래서 여기서의 ‘사천(事天)’은 일반적인 ‘하늘을 섬긴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알라만을 신봉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불법(불교)을 알고 믿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절하는 법이 없다’라고 한 것은 알라 외의 사람을 포함한 일체 사상에 대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법이 금지된 이슬람교의 교의를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알라에게만은 예배드릴 때,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따라서 무릎을 꿇고 절하지 않는 것은 교법에 의한 것이지 어떤 ‘국법(國法)’에 의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본문에서의 ‘국법’은 ‘나라의 관행’ 또는 ‘관습’쯤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구당서] 권198 [대식전]에 따르면, 당 개원 때 처음으로 내당한 대식사신이 당의 황제를 알현할 때 ‘서서 절을 하지 않자’ 헌사(憲司)가 이를 나무라니 사신이 말하기를, 대식에서는 ‘알라만을 숭배’하므로 왕을 진현할 때도 절을 하는 법이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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