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러시아 지배하의 투르키스탄 자치를 위해 투쟁하던 독립 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인 압둘라쉬드 이브라힘(Abdul-Rashid Ibrahim , 1852-1944)은 투르키스탄의 타라시를 출발해 투르키스탄 전지역과 만주, 블라디보스톡, 일본을 지나 이스탄불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을 여행합니다. 이브라힘은 러시아에 대항한 아시아의 범 무슬림연대의 구축과 오스만터키 술탄의 밀명을 받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과 오스만제국간의 동맹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 여행 도중, 열흘 남짓한 기간에 걸쳐 당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던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여행기록은 1913년 [이슬람세계(Alem-i Islam)]라는 견문록으로 정리되어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한 기록은 총 620페이지 중 30페이지가량을 차지합니다.
이브라힘의 한국 여행에 대한 기록은 1909년 6월 18일,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다음날인 19일 부산항에 입항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브라힘은 부산에서 해안가로 나오기 위해 탄 나룻배에서 처음으로 한국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 대한 이브라힘의 인상은 한국인의 얼굴형은 물론이고 복장까지 투르키스탄에서 본 우랄-바쉬쿠르트족과 흡사하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이브라힘은 순간적으로 나룻배의 짐꾼들을 보고 우랄-바쉬쿠르트족이 이곳까지 일자리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이브라힘은 이 부산에서의 한국인들과의 첫 만남에 대해 또 다른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룻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후, 반 엔을 나룻배 사공의 뱃삯으로 지불했습니다. 그러자 사공은 돈을 받은 채 어디론가 휑하니 가버렸고, 이브라힘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영빈관 식당으로 갑니다. 그리고 식사 후, 영빈관을 나올 때 그 사공으로부터 뱃삯의 절반 정도 되는 돈을 돌려받게 됩니다. 이브라힘이 어리둥절하게 여기자, 사공은 이것이 잔돈이라고 답합니다. 이브라힘은 사공에게 다시 묻습니다.
"왜 그때 잔돈을 드릴 테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소?"
"전 금방 잔돈으로 바꿔서 드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뜻대로 되지 않아 가게에까지 가서 돈을 바꾸느라 늦어졌습니다. 와 보니 당신이 안 계시기에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브라힘은 이 사공의 태도에 대해 "선천적으로 착한 품성"이라며 꽤나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위 글은 <이희수. 이슬람인이 본 1909년의 한국, 아시아문화 제5호(1989)>를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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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이희수 박사의 저서 “한·이슬람 교류사(1991년)”에서 옮겼습니다.-
부산 (212쪽)
일본에 비해서 눈에 띄는 특색이 한국에 있다면, 지나가다 아무 집에 무심코 들어가도 남자들만 있고, 여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몇몇 집에 들어가 보아도 남자들만 있는 점이 참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여자들은 어디에 갔습니까?"
그때 비로소 이해한 것은 우리 이슬람 관습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여자들만의 안채가 따로 있어, 외부 인사나 외국인들이 안채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채로 향하는 대문도 따로 나 있다. 여자들의 얼굴을 덮어 가리는 습속(習俗; 습관이 된 풍속)도 똑같다. 이 점은 좀 더 알아보고 연구한 다음에 적당한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여성과 사회윤리 (220-221쪽)
여인들 가운데 일부는 얼굴을 내놓고 자유롭게 보행하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얼굴을 얇은 천으로 가린 채 긴 외투를 걸치고 길거리를 다닌다. 일부 젊은 처녀들도 완전히 베일을 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데, 베일 쓰는 풍습과 여인들의 모습이 <부하라>, <투르키스탄> 등지에서 무슬림 여인들이 하는 습속과 유사하다. 여인들이 쓰는 망토 같은 외투는 남자들의 <줏베(외투)>에 해당된다. 특히 한국 여인들은 하얀색 베일을 즐겨 쓴다. 따라서 여인들이 남자들과 자유롭게 교제를 맺는 것은 거의 어렵다. 얼굴을 가리지 않는 소위 신여성들도 일본 여자들과는 달리 무질서한 자유 교제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압둘라쉬드 이브라힘(Abdul-Rashid Ibrahim)은 베일을 쓰는 풍습에 대해 한국인 종교 지도자 한 사람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여인들이 얼굴을 베일로 가리는 이유가 뭘까요? 당신들의 종교적인 관습에 혹시 그러한 가르침이 있나요? 아니면 도덕적 윤리관에 입각한 것인가요?"
"얼굴을 가리는 관습은 가장 보편적인 자연현상이요. 백년간이나 내려오는 국민의 윤리적 전통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 숫자도 상당히 줄어들었소." (원본 p.468)
"자연적 현상이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약자가 강자에 대항해 항상 자신을 보호할 방도를 갖추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요. 약자는 항상 폭행과 억압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요. 어떤 인간, 어떤 민족이든 간에 남자들은 공격 근성이 있게 마련이어서,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남성들의 충동과 공격 근성을 유도하여, 그들의 희생이 될 수 있는 소지를 만들어주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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