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장후세인 선생

히잡, 여성의 권리 억압이 아닌 다름의 문화로 받아들인다면?

장후세인 2012. 12. 24. 21:26

문화체육관광부, 2010년 4월 6일

 

봄이 더디게 오는 토요일 오후, 한국 속의 낯선 땅 이태원에 내렸다. 파란 눈, 갈색 머리, 검은 피부. 여기가 한국인지 의심이 갈만큼 낯설고 이국적이다. 복잡한 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에 다다르니 저 멀리 신기한 건물 하나가 보인다. 바로 한국의 이슬람 성원이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이슬람성원은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성원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이슬람 성원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한동안 이슬람 성원을 구경했다. 가장 높은 곳, 하늘 높이 솟은 탑은 (어느 종교나 그러하듯) 신에게 가까워지려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염원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주변을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턱수염이 덥수룩한 외국인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장 후세인입니다.”

그는 내게 자연스런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는 내가 이번 취재를 위해 참고 자료로 읽었던 ‘한국인이 이슬람에 궁금해 하는 33가지’라는 책의 저자였다. 그는 ‘달콤한 것을 먹으며 달콤한 말을 나눈다’는 속담과 함께 사탕을 나눠주며 인터뷰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나는 터키에서 태어났고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15년 전 국비유학생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9.11사태이후 한국에 널리 퍼진 이슬람에 대한 많은 오해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원래는 터키에 돌아가 한국문화를 알리고 싶었지만 지금 오히려 한국에 이슬람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학시절 한국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그녀는 천주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고 저는 터키에서 한국으로 귀화를 했습니다.(웃음) 지금은 세 살 된 딸, 뱃속의 아기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이슬람 관련 번역일과 출판업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 이슬람은 어떻게 전파되었나요?
옛날 한국 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파병을 많이 한 나라가 바로 터키였어요. 터키군인들은 단순히 전쟁을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터기군인들은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봐주고 교육도 시켜줬으면 파병기간이 만료되어 한국을 떠날 때는 다음 후임자에게 아이들을 맡기기 까지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감동했고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선행을 배푸는 지 궁금해 했습니다. 무슬림이었던 터키군인들은 한국인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은 석유가 너무나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아랍권 국가와 많은 교류를 했고 사우디와 특히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한국은 사우디에 도시 인프라 사업 건설을 지원했고, 사우디는 석유를 원조해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 정부는 한남동에 토지를 우리에게 주었고 지금의 중앙 성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슬람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이 많다고 비난을 받는데요. 히잡이나 직업 선택권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만 질문하겠습니다. 천주교의 수녀님들은 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이슬람여성들은 왜 억압의 대상이 됩니까? 무슬림들이 히잡을 하는 이유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히잡을 착용함으로써 정숙함과 고결함을 추구하는데 이는 억압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해방으로 간주됩니다. 여성들이나 남성들은 서로 외모에 집착합니다. 그로 인해 차별이 존재하고 진정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여성 무슬림들은 외면보다는 내면을 가꾸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하기 위해 히잡을 착용합니다. 이밖에도 직업선택권 같은 경우 이슬람에서는 여성들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권리는 꾸란(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무슬림들의 삶 그 자체)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은 절대적으로 꾸란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슬람은 꾸란에 나온 대로 여러 가지 제도와 규칙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재산권,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의무적으로 행하는 예배나 라마단기간 단식에도 여성들은 생리나 임신 때문에 의무적으로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 9.11사태이후 많은 오해를 받지 않으셨나요?
9.11사태이후 이슬람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9.11사태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겁니다. 9.11이후 매스컴에 이슬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주 등장하다 보니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됐고 사람들은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계기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아직도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한국사회에 존재합니다. 그 모든 오해와 편견이 사라질 때까지 한국에서 이슬람을 올바르게 알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생각보다 깊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모른다'고 하기 보다는 '관심 부족'에 기인하는 듯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 그가 예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예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5분에서 10분정도 진행되었고 단체기도 후 무슬림들은 개인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엄숙한 예배시간 때문에 긴장이 되었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외국 무슬림들이 돈 내고 사진 찍냐며 농담을 건네며 여유있는 모습으로 장난끼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배하는 모습까지 본 뒤 장후세인씨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 세상밖으로 나오기 위한 태동

이슬람이 한국에 뿌리 내린지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비밀을 간직했기 때문일까?, 서구 문화에 많이 젖어있는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은 편견과 왜곡된 교리로 오해받고 있다. 또한 매스컴이나 검증되지 않은 출판물로 인해 한국의 많은 무슬림들이 고통을 받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이슬람 문화를 올바로 바라보게 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슬람 대학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적 원조로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이슬람을 교육 이념으로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슬람 문화를 알리기 위한 센터도 서울에 개원할 계획이라 한다. 센터에서는 이슬람 문화를 소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랍어, 터키어, 이란어, 우르드어 등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이슬람권 언어의 교육도 이루어 질 계획이다. 우리도 이제는 그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을 편견 없이 받아드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오해
1. 이슬람에서 “알라신”라는 말은 없다. - 알라는 하나님을 칭하는 아랍어이다.
2. 이슬람은 아랍인들만의 종교가 아니다. - 세계에 널리 퍼진 이슬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다. 이중 단 15%만이 아랍인이다.
3. 이슬람은 여성차별적인 종교가 아니다. - 1400년전 이미 꾸란에는 여성들에 대한 권리가 명시되어있다.
4. '이슬람=테러'의 등식은 틀렸다. - 유럽이나 미국의 확대해석 때문에 모든 무슬림들이 고통 받고 있다.
5. 이슬람은 호전적이고 투쟁적인 종교가 아니다. -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희생과 봉사를 최우선으로 실천하는 이타적인 종교다.

 

글/김형민(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

출처:http://culturenori.tistory.com/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