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장후세인 선생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21>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장후세인

장후세인 2012. 12. 23. 21:40

서울신문 2008 7 16()

 

서울 한남동 이슬람중앙사원 1층의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사무실에 가면 이국적인 얼굴의 독특한 차림을 한 4명의 외국인 무슬림(이슬람 신자)을 항상 볼 수 있다. 터키인 2명과 태국인 1, 인도네시아인 1. 제 각각 다른 일을 맡아 분주하게 몸을 놀리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는 웃음으로 손을 내미는주인이자 안내자들이다. “이슬람 종교를 떠나 평화와 평등, 사랑을 배우고 나눈다.” 4명의 이방인들. 그들은 한사코나는 이슬람 선교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터키 출신의 장후세인(37)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이슬람 출판 책임을 맡아 살고 있는,‘정 많은귀화 한국인이다.

 

매주 금요일 발간되는 이슬람 소식지주간 무슬림마감이며 한국어판 이슬람교 교리책자 막바지 정리, 몇 년째 매달려온 이슬람 안내서 교정, 인터넷에 쏟아지는 이슬람 관련 질의 응답…. 모두 혼자 하기엔 벅차 보이는 일들. 예배 직전 돌아간 대학생 방문객들의 뒷일까지 겹쳐 아주 바쁘단다.“아프간 피랍 이후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피랍 사태 직후엔죽여 버리겠다.’는 험악한 협박전화에 매일매일 몸조심을 하고 살았는데….”

분당샘물교회 봉사단의 피랍은 선교보다는 아프간의 정치적 상황에서 터진 사고의 성격이 크다.”는 후세인. 그는 피랍 당시 봉사단의 신원 노출을 포함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아프간 사태 이후 찾아오는 이들이 부쩍 늘어 요즘은 토·일요일이면 하루 평균 500여명씩 상대해야 한다. 그중엔 스님과 대학생, 수녀, 사제, 목사들이 적지 않다.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무슬림들이 나누어 강의며 사원 안내를 하느라 주말엔 끼니를 거르기 일쑤란다.

 

귀화한 한국이 고향 터키보다 더 편해

 

앙카라 동쪽의 작은 도시 요즈가트에서 대대로 제빵 기술자의 업을 이어온명문 빵집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앙카라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어학도. 그는 왜 여기서 이렇게 살아갈까.

어릴 적 아시아, 특히 한국의 TV 만화영화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며 자랐다는 그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건 순전히 취직 때문이었다. 터키에서 프랑스어며 독일어 등 외국어를 많이 쓰지만 희소성 있는 한국어가 유리하리란 생각에서였다.

앙카라대학 시절 공부를 꽤 잘했어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서울대를 들어갔지요.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고 지금은 논문현대 한국어와 터키어 서법 비교연구를 준비 중입니다.”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 구사가 더 정확하고 빠르다. 이방인의 능숙한 고급 한국어에 공연히 샘이 난다. 그렇게 특출한 한국어 실력을 쌓았지만 졸업 후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 머물며 통·번역 일로 살아가던 중 3년 전 우연히 이슬람교중앙회를 찾은 게 한국인이 된 계기.

1994년 서울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래 줄곧 한국에서 살아와 올해로 한국생활 14년째.2006년 귀화했고 서울여대 미술학도 출신인 한국 부인을 맞아 이태원에 알량한 보금자리도 꾸몄다.“이젠 터키의 고향엘 가도 한국 일이 눈에 밟혀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후세인. 상황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이들로부터 여전히위험한 소수종교로 눈총 받는 이슬람교의선교사로 살아가기란 힘든 일이 아닐까.

 

숭례문 불 탈때 너무 안타까워 눈물까지 쏟아

저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평화와 사랑의 안내자로 보아 주세요.” 인터뷰 내내 선교사로 불리기를 마다한다. 그래도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닐까. 무슬림으로 한국에 사는 이유를 짓궂게 따져 묻자지난해 숭례문이 불타 무너질 때 너무 안타까워 눈물을 쏟았다.”는 말을 들려준다.

한국과 터키는 닮은 게 많아요. 윗사람 공경하는 미풍이며 정이 많은 사람들, 명절 때 가족을 찾아 나서는 귀성 행렬…. 고달픈 학생 시절 숭례문을 지날 때마다 고향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한국을 상징하는 으뜸 문화재이자 저에겐 고향과 타국을 이어주는 위안의 큰 대상이었는데 허무합니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이 흘리는 눈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서 98%가 무슬림인 터키인들의 심성을 그대로 보았다.”는 후세인. 그래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한국인들은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하듯공격적인 유일신 신앙의 매몰자들로 무슬림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한다.“흔히 한국에서 회교로 불리는 이슬람은 어느 한 민족만의 배타적 종교가 아닌 평화와 평등의 종교입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생긴 모든 나쁜 일을 무슬림들의 소행으로 몰아가기 일쑤지요.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대표적 종교란 인식도 아주 심합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절 만난 한국인들의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큰 것에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 오해를 씻으려면 이슬람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 다른 무슬림과 함께 낸아름다운 이슬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낸 번역서만도 8.2001년 낸이슬람이란 무엇인가 6000,2006년 펴낸한국인이 이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 33가지 2000권이 팔렸다고 한다. 한달쯤 후면 두세 권이 새로 나온다.

이곳 이슬람교중앙회에서 3년째 해오고 있는 출판 일도 모두 한국인을 위한잘못 알려진 이슬람 바로잡기의 연속.

한국 생활이 행복하고 자신과 이슬람, 무슬림을 이해하는 한국인들이 늘어가는 게 큰 보람이라는 후세인. 무슬림을 왜곡되지 않은 실상 그대로 보고 이해해 주기를 거듭 당부하는 그는 분명 선교사 아닌 선교사였다.

미술을 아주 좋아하는 착한 한국인 부인과 함께 사는 것은 큰 복이자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할 무렵 공교롭게 부인에게서 손전화가 걸려온다.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던애처가가 이슬람 하디스(예언자의 언행록) 한 대목을 들려준다.“가장 훌륭한 남자는 아내를 가장 잘 위하는 남자이다.” ‘가정이 화평할 때 세상이 평안하다.’는 아주 친숙한 말을 뒤로한 채 손가방을 챙겨 사원을 나서는 뒷모습은 정말 한국인을 많이 닮았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출처: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716028001&s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