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유럽과 이슬람 국가의 생활상 비교
역사는 우리에게 이슬람이 인류에게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밝혀줍니다. 이슬람이 진리이며 인간을 위한 최상의 종교이자 삶의 방식임을 과거, 현재가 증명하고 있고 미래가 증명할 것입니다. 유럽과 이슬람 국가들의 다음의 역사적 사실들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진실로 이슬람이 인간을 위한 가장 올바른 인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00년대 유럽의 생활상
결혼식 & 위생
1500년대 영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6월에 결혼을 했다. 왜냐하면 1년에 한 번하는 목욕을 5월에 하기 때문에 6월이면 아직도 냄새가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신부들은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감추기 위하여 꽃다발을 들었다. 그때부터 결혼할 때 ‘ 부케(bouquet)’를 드는 풍습이 생겼다.
목욕
목욕은 큰 통에 더운 물을 채워서 했다. 가장(家長)이 제일 먼저 깨끗한 물로 목욕할 특권이 있었고, 그 다음은 남자들과 아들들, 그리고는 여자들과 아이들, 맨 마지막으로 아기들이 했다. 그때쯤이면 물이 너무 더러워 그 안에 누가 있어도 모를 수 있었다. 그래서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 water (목욕물을 버린다고 아이까지 버리지 마라; 필요 없는 것을 버릴 때 중요한 것을 함께 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라는 격언이 생겼다.
초가지붕
집들은 초가(짚 묶음)지붕으로 그 밑에는 나무 받침이 없었다. 지붕 속은 동물들이 지내기에 유일하게 따뜻한 장소였기 때문에 고양이와 작은 동물들 (쥐, 벌레 등)이 지붕 속에서 살았다. 비가 내리면 미끄러워 간혹 동물들이 지붕에서 떨어지곤 하였는데, 그때부터 “It’s raining cats and dogs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라는 표현이 생겼다.
침대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없었는데 특히 침실이 그랬다. 벌레나 다른 것들이 떨어져 깨끗한 침대를 망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침대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천을 덮어 침대를 보호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canopy beds (일명 공주침대)’의 유래이다.
바닥
바닥은 그냥 흙(dirt)이었다. 오직 부자들만이 흙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닥재를 썼다. 그때부터 “dirt poor(더럽게 가난한)”이란 표현이 생겼다. 부자들은 바닥을 슬레이트로 했는데 겨울에 젖으면 미끄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하여 ‘straw(짚)’를 깔았는데 겨울이 깊어질수록 짚을 계속 덧깔아 문을 열면 이것들이 밖으로 밀려 나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구에 나뭇조각을 놓았는데 그때부터 “A thresh hold (문지방)”이란 말이 생겼다.
콩 죽
옛날에는 부엌에 불을 지피고 그 위에 항상 큰 솥을 걸어놓고 요리를 했다. 그들은 매일 불을 지피고 솥에다 음식물을 첨가했다. 주로 채식을 했고 고기는 별로 먹지 못했다. 저녁에 스튜를 먹고 남은 것은 솥에 그대로 두어 식히고, 다음날 거기에 좀 더 추가하여 요리하곤 했다. 어떤 때는 음식이 솥 안에 꽤 오랫동안 있기도 했다. 그래서 “Peas porridge hot, peas porridge cold, peas porridge in the pot nine days old…(콩 죽이 뜨겁고, 콩 죽이 차갑고, 콩 죽이 솥 안에서 아흐레나 있었네...)” 라는 노래가 생겼다.
돼지고기
때때로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손님이 오면 그들은 자랑하기 위해 베이컨을 걸어 놓았다. 그것은 가장(家長)이 “bring home the bacon (생활비를 번다)”는 부(富)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베이컨을 조금 썰어 손님을 대접했는데, 이것이 “chew the fat (지껄이다)”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토마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주석으로 만든 접시를 사용했다. 산성이 강한 음식은 납이 음식에 녹아들게 했는데, 이로 인해 납중독으로 죽는 일이 생겼다. 특히 토마토의 경우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는데, 그 때문에 그 후 약 400년 동안 토마토는 독이 있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참호 구강염
많은 사람들은 둥글게 깊이 파 놓은 그릇처럼 생긴 나무 쟁반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무 쟁반을 결코 닦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기생충이 생겼다. 사람들은 기생충으로 가득 찬 나무 쟁반에 식사를 했기 때문에 참호 구강염에 걸리곤 했다.
빵
빵은 신분에 따라 나눠졌다. 일꾼들은 바닥의 탄 부분을 먹었고, 식구들은 중간부분, 손님은 맨 위의 바삭바삭한 부분을 먹었다.
납으로 만든 컵
납으로 만든 컵으로 맥주나 위스키를 마셨는데, 이들의 화학 작용으로 인해 술을 마신 사람이 때로는 2-3 일간 기절해 있기도 했다. 길을 가던 사람이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죽은 줄 알고 장사지낼 준비를 하곤 했는데, 기절한 사람을 부엌 식탁에 2-3 일간 뉘어 놓고는 식구들이 그 주위에서 먹고 마시며 그 사람이 깨어나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래서 “holding a wake (장사지내기 전날 밤에 철야하는)” 풍습이 생겼다.
무덤
영국은 작고 오래된 나라여서 묘지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에서 관을 파내어 뼈를 납골당으로 보내고 그 무덤을 다시 사용했다. 그들이 관을 다시 열었을 때, 25 개중 1 개꼴로 관 안쪽에 긁힌 자국들을 보았고 그들은 산 사람을 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송장의 팔뚝에 끈을 묶어 관 밖으로 해서 무덤 밖의 종(鐘)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밤새도록 무덤가에 앉아 (the graveyard shift: 3교대 근무제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근무) 종이 울리는가를 지켜보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종소리 때문에 살아나거나 (saved by the bell: 다른 사정으로 간신히 살아나다)” 또는 “a dead ringer (아주 똑같이 닮은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말이 생겼다.
프랑스인들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많은 귀족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비단 베르사유 궁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파리의 유명한 샤르르 가르니에의 오페라 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루이 14세가 그때까지 살던 파리의 루블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긴 이유도 루블 궁전이 오물로 뒤덮여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파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요강에 대소변을 본 다음에 요강과 함께 물통을 들고 센 강변으로 가곤 하였다. 그는 강에서 먼저 마실 물을 채취한 다음에 요강에 있는 대소변을 강으로 붓곤 하였다.’ *L'Eau Potable (마실 수 있는 물)이란 책에서-
600 & 1500년대 이슬람 국가의 생활상
예언자 무함마드(그분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는 비잔티움 황제 헤라클리우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셨다. 그들은 서로에게 서신을 주고받고 특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한 번은 예언자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는데 그 선물 중 하나는 의사였다. 그 의사가 예언자를 만났을 때 그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폐하가 저를 당신에게 노예로 보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무료로 치료하겠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그분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그가 할 일을 받아들이셨다. 예언자의 명령대로 그에게 집 한 채가 주어졌고 매일 맛있는 음식과 음료도 대접되었다. 날과 달이 지났지만 무슬림 단 한 명도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의사가 창피한 모습으로 예언자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여기에 당신에게 봉사하러 왔지만 여태까지 환자가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먹고 마시곤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그분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네가 판단할 일이다. 손님에게 잘 해주고 대접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이기 때문에 만일 더 오래 머물고 싶으면 괜찮다. 그러나 한 가지를 잘 알아야 하는데 여기서 수년 동안 있어도 아무도 너에게 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교우들은 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슬람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 방법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의 교우들은 청결에 주의하며 배가 고프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식탁에서 배가 부르기 전에 일어난다.”
우리는 예언자(그분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하신 위와 같은 말씀을 통해 무슬림이 결코 병에 걸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청결을 주의하는 무슬림이 쉽게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스만제국 술라이만 왕(1495-1566) 시대에 한 독일 목사가 이스탄불을 구경한 후 1560년에 썼던 책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스탄불의 청결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여기서 사람들이 매일 다섯 번 몸을 씻는다. 모든 가게들은 아주 깨끗하다. 길거리에서는 어떤 쓰레기도 볼 수 없다. 판매자들의 옷에는 조금의 얼룩조차 묻어 있지 않다. 또한 ‘하맘(Hamam; 목욕탕)’이라고 부르는 뜨거운 물이 있는 건물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럽다. 그들은 목욕할 줄 모른다.”
위 이야기는 유럽 사람들이 수세기 후 목욕하는 것을 배우기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