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알라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 백성들에게 알라를 경배하고 죽음 후의 삶이 존재함을 믿고 이에 대해 준비하도록 당부했다. 예언자들은 죽음 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매우 강조했으며, 사후세계를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은 알라를 부정하는 것이며 다른 모든 믿음을 의미 없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라의 모든 예언자들이 죽음 후의 삶이라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변함없이(몇 천 년의 간격을 뛰어넘어) 다루었다는 이 사실은 사후세계에 대해 그들이 선포한 지식의 원천이 똑같이 알라의 계시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알라의 예언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쳤으며, 사람들은 특히 죽음 후의 삶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은 성실한 추종자들을 많이 확보하였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그 추종자들로 하여금 조상들이 세운 신앙과 전통, 그리고 관습들을 포기하게 하였는가? 그들 자신의 공동체에서 철저하게 소외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대답은 명료하다. 그들은 마음과 가슴의 능력을 활용하여 진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지각적 의식을 통하여 진실을 깨달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죽음 후의 삶에 대한 지각적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라께서는 지각적 의식 이외에 인간에게 이성적(理性的), 미적(美的), 그리고 도덕적 의식을 동시에 부여하셨다. 바로 이 의식이 감각적 자료로는 검증이 될 수 없는 진실과 관련하여 인간을 올바로 인도하는 것이다. 알라의 예언자들이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사후세계를 믿으라고 촉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성적, 미적, 도덕적 의식에 호소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꾸란은 불신자들이 사후세계를 부인하는 확실한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아주 명료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순전히 억측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에서의 우리 삶 말고는 어떤 것도 없으니 우리는 죽고 또 살며 우리가 죽는 이유는 오직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에 관해 그들은 어떤 지식도 없느니라. 그들은 오직 추측만 할 뿐. 그들에게 나의 명백한 증거가 낭송될 때 그들은 오직 '너희들의 말이 옳다면 우리의 조상을 데려와 보라'라고 주장할 뿐이니라. 말하라. '알라께서는 너희들을 살리시고 죽음에 이르게 하시며 그 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활의 날 너희를 모이도록 하시느니라.'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더라.”
(꾸란 45장 24-26절)
알라께서는 매일 매 순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재창조의 예증이 되도록 하신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비는 건조하고 메마른 땅을 다시 비옥하게 만든다. 땅이 말라 갈라져도 알라께서 그 분의 자비로 비를 내리시면 땅은 생동케 되고 풀과 나무들은 다시 생명을 얻어 자라게 된다. 가을이면 나무는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봄이 되면 다시 새로운 싹을 돋아낸다. 겨울 내 메마르고 죽은 나무를 봄이 되면 다시 생동케 하시는 알라께 있어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시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해마다 자연의 부활을 경험하는 인간이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 부인할 수 있겠는가?
알라께는 인류를 창조하시고 다시 부활시키시는 것은 한 인간을 창조하고 다시 부활시키시는 것과 같다.
죽음 이후의 삶의 필연성에 관해 꾸란이 제시하는 여러 설명은 인간이 도덕적 의식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실제로 만약 죽음 이후의 삶이 없다면 알라에 대한 믿음 그 자체가 의미 없게 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가 알라를 믿는다 하더라도 그가 믿는 존재는 불공정하고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신(神)으로서, 예전에 한번 인간을 창조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들의 운명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그런 신이 될 것이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공정하시다. 무고한 수백, 수천의 백성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며, 극심한 사회 부패를 조장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그들의 욕망 충족의 도구로 삼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저지른 압제자들을 알라께서는 반드시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기 때문에, 또한 한 사람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적절한 처벌과 보상은 불가능하다.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과 사악하고 나쁜 사람을 똑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이라면 이러한 논리를 거부하고 사후 세계의 가능성을 시인할 것이다. 알라는 꾸란에서 이러한 진리를 다음과 같은 근거로 제시하셨다.
“우리(알라)가 너희들을 장난으로 창조했다고 생각했던가? 그리고 너희들이 우리(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꾸란 23장 115절)
“그리고 우리(알라)가 하늘과 땅과 그 둘 사이를 창조한 것은 목적에 의함이니라. (어떤 목적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불신하는 자들의 추측이니라. 그러니 불신하는 자들에게는 불(지옥)으로부터 재앙이 있을 것이니라. (알라와 예언자를) 믿고 선을 실천하는 자들과 세상을 해 되게 하는 자들을 어떻게 내가 동등하게 대한단 말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사악한 자들을 어떻게 내가 동등하게 대한단 말인가?” (꾸란 38장 27-28절)
“악을 행한 자들은 내가 그들을, 그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에 있어서, (알라와 예언자를) 믿고 선행을 실천한 사람들과 동일하게 대우할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그들의 판단이 참으로 악하도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진리로써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으니 모든 영혼은 그가 행한 것으로 보상을 받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리고 그들은 결코 고통 받지 않으리라.” (꾸란 45장 21-22절)
“그리고 우리(알라)는 하늘들과 땅과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을 장난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오직 진리로써 창조하였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진실로 심판의 날은 그들 모두에게 정해진 시간이니라.” (꾸란 44장 38-40절)
꾸란은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알라께서는 기록된 각자의 행위에 따라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실 것임을
“그리고 불신자들은 '우리에게 심판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니 (그들에게) 말하라: '그렇지 않노라. 보이지 않는 것도 다 아시는 주님께 맹세코 그것은 너희들에게 다가갈 것이니라. 하늘들과 땅에 있는 티끌만한 어떤 것도, 그보다 더 작은 것도, 그보다 더 큰 것도 그분을 피할 수는 없느니라. 그 모든 것들은 명백한 책에 기록되어 있노라. 이는 (알라와 예언자를) 믿고 선행을 실천하는 자들을 보상하기 위해서라. 그러한 자들, 그들에게는 용서와 풍성한 양식이 있노라. 그러나 나의 예증들을 멀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 그러한 자들, 그들에게는 가혹하고도 고통스런 벌이 있노라.” (꾸란 34장 3-5절)
부활의 날에는 알라의 속성인 공정하심과 자비로우심이 완벽하게 나타나게 된다. 천국의 기쁨이 그들을 맞이할 것이라 믿고 현세에서 알라를 위하여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에게 알라께서는 무한한 축복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알라의 은혜를 배반하고 다가올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방관한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그 둘을 비교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알라)와 맺은 아름다운 약속을 이행한 자와, 우리(하나님)가 베푼 현세의 삶만을 즐긴 자가 부활의 날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꾸란 28장 61절)
죽음 후의 세계를 믿는다는 것은 내세에서의 성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 각자의 행위를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어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모든 영혼은 죽음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우리(알라)는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시험하리라.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알라)에게로 돌아올 것이니라.” (꾸란 21장 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