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목적을 위해 사는가?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색가들은 위의 의문들을 간단한 말로 표현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왜?”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눈에 보이는 세계만 믿고 창조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無神論者;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오로지 지각에 의한 자료만을 신뢰한다. 그들에 따르면 우주는 스스로 생겨났다고 한다. 우주의 모든 질서는 단순히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며, 사람은 여느 동물이나 식물과 다를 바 없고, 잠시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삶을 끝마치는 존재라는 것이다.
창조주가 존재하며 그분께서 인간을 인도하기 위해 예언자들을 우리에게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과 혼란은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명제들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을 가진 자)들의 마음에 안정과 평온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듯하다. 만약 안정과 평온이 있다 해도 그것은 잠시뿐이며 스스로가 평화롭다고 거짓하는 것이므로 마음의 불안정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불신자(不信者)들은 자신의 존재의 목적에 대해 진실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며, 삶의 쾌락을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삶이 재미없어지고 그들 자신이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에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 그리고 삶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수가 자살(自殺)을 감행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WHO(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2006년 일본에서는 총 29,921건의 자살이 발생했다. 이는 하루 평균 82건씩 발생했으며, 한 시간에 3명 꼴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국민들이 의식주(衣食住)와 의료보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에서 1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는 2006년 21.5명에서 2007년 23.9명, 2008년 24.3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2008년 자살자가 1만2858명으로 전년 대비 5.6%나 증가했다. 하루 평균 35.1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이는 미국의 2.5배에 달하며, 문화 속에 자살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만약 모래 속에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무슬림들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에게 말한다. 당신이 사막 한가운데서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이 시계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계가 저절로 온 것으로 추정할 것인가? 물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시계가 모래 속에서 스스로 존재했으며 스스로 그 모습을 나타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땅속에 묻힌 금속들이 시계 부품들로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계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제작자가 있게 마련이고, 만약 그것이 정확한 시간을 표시한다면 우리는 그 시계를 만든 이가 아주 훌륭한 장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순한 우연으로는 제대로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 시간이 너무나도 정확하여 전문가들이 먼 앞날까지의 일출과 일몰을 알고 신문에 쓰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시간들을 관리하는가? 지능적인 제작자 없이 잘 작동하는 시계가 존재할 수 없듯이 태양 또한 마찬가지이다. 태양은 어찌하여 규칙적으로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이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일인가?
지구로부터 약 149,600,000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은 지구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생각해 보자. 만약 태양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 지구는 불타오르게 된다. 또한 태양이 너무 멀리 떨어지면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얼음 행성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 이 거리가 적당하다고 누가 미리 결정했을까?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까? 태양이 없으면 식물은 자라지 못하고, 동물과 사람은 그 결과로 굶어 죽게 된다. 태양이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기로 그렇게 스스로 결정했을까?
태양 빛은, 지구 대기(大氣) 속의 오존층이 막아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빛이 된다. 그러나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있어 그것이 해로운 자외선(紫外線)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누가 이러한 보호막을 우리 주위에 설치하였는가?
일출을 보자. 우리는 태양의 에너지와 한낮을 밝혀주는 태양빛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또한 일몰이 필요하다. 뜨거운 열이 지속되어서는 안되며 시원한 밤이 있어야 하며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빛은 꺼져야 한다.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누가 이러한 작용들을 조절하는가?
태양의 온기와 적절한 기후를 갖추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무엇인가를 추가하고 싶다.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을 통해 따뜻함을 얻고 피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보기 좋은 옷을 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태양의 출몰을 창조하신 그분은 단순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장관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 반복된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해가 뜨지 않거나 해가 지지 않은 적이 있는가? 누가 이렇게 완벽한 시스템을 마련한 것인가? 태양이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인가? 분명 이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만드시고 유지하시는 분께서 계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빛과 에너지, 보호와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신 창조주께 감사 드려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정확한 시간과 아름다운 모양의 시계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시계를 만든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고 훌륭한 기술을 가진 시계 제작자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을까?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