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이란을 여행한 후 이슬람을 선택한 어느 서울대생의 이야기
-아래의 내용은 젠나무민북스에서 발행된 “이슬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옮겼습니다.-
저는 1980년생 김은수(남) 라고 합니다. 제 나이 24살이 되던 해, 즉 2003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구요. 이 글을 통해 제가 왜 이슬람으로 입교하게 되었는지 여러분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소위 ‘모범생’이었습니다. 착실히 공부하고 부모님 말씀에 군말 없이 순종하는 학생…그러던 중, 고등학교 지구 과학 시간이었나요, 지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창조의 첫 순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더군요. 하늘과 땅이 있었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최초 상황이 묘사되면서, 처음에는 바다 생물이 만들어졌고 그 후에 육지 생물이 생성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난 후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식의 설명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있었다고? 그럼 그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수소와 탄소와 기타 여러 기본 원소들이 합쳐져서 우연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그럼…그 수소와 탄소는 어디서 난 건대?” 아무도 똑 부러지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수소와 탄소의 기원이 밝혀진대도 그 기원 물질은 그럼 어디서 생겨난 건지…이런 식으로 물질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계속하면 그 누구도 결론에 도달할 수 없겠더군요.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창조되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창조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만들었다면?” 일리가 있는 설명입니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이 질문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하나님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은 잘 아시다시피 학업 때문에 다른 것에 집중할 겨를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교 진학’이라는 무거운 짐을 앞에 두고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새벽잠을 아끼고 코피를 쏟고…그렇게 공부하여 드디어 제가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뭇 고등학생들이 품고 있는 대학교의 환상을 저도 가지고 있었으나, 저의 대학교에 대한 환상은 좀 남달랐습니다. “아~!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 모인다는 이 대학교. 나랑 같이 공부할 친구들은 윤리 시간에 거의 만점을 받았을 거고, 윤리에 대해 남들보다 많이 아니까 남들보다 더 착한 사람들이겠지. 아는 만큼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졌던 저는 제 주위 친구들에 실망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리란 정직, 성실, 정의, 선행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그 대학교에서 제가 생각하는 진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기숙사 아침 신문 좀도둑부터 시험시간 커닝까지. 제 맘에 드는 행동을 하는 ‘진짜 지성인’은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들처럼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는 여타 공동체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상급자의 하급자 구타가 일상화되고 계급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곳. 도대체 진리가 실현되기는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불만도 많았습니다. 짬짬이 있었던 휴가 기간에 읽은 여러 책들 중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상병이 되고 군생활에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저는 천주교 신자인 제 친구에게 하나님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당시의 논리적 추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존재가 규명되고 나를 둘러싼 우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설명되니까요. 친구가 같이 성당엘 가자고 해서 따라갔죠. 매주 성당엘 가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예수의 몸과 피라는 하얗게 생긴 작은 빵 조각도 먹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성경을 펼쳐봤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는 성경을 혼자 무턱대고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렵고, 책 분량도 한두 권이 아니더군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정말 그럴까? 왜 삼위일체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아담의 원죄로 인해 우리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내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나도 감옥을 가야 하나?” 제가 생각하는 진리는 ‘정의’라는 덕목을 포함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메시지는 왠지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대학교에서 느꼈던 실망을 기독교에서 다시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학교 친구들에 대한 실망이 ‘실천하지 않는 지성인’에 대한 것이라면, 기독교인들에 대한 저의 실망은 ‘행동하지 않는 신앙인’에 대한 것이라고 해야겠네요. 진리의 덕목 중 하나가 선행이라면, 기독교인은 그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왜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착하지 못한 걸까? 왜 가장 좋은 사람이어야 할 목사님들이 교회 내부의 비리를 저지르는 걸까?” 저는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을 믿고는 있었지만, 기독교인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과 같아 보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택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독교 말고는 하나님의 종교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나긴 군복무 후, 제대와 복학 사이의 공백을 이용하여 터키와 이란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에서 겪은 세 가지 사건이 저에게 이슬람입교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 어느 날 저는 터키 동부 지역에서 버스 터미널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습니다. 촉박한 마음에 옆에 있는 터키 청년에게 ‘타르미날! 타르미날!’하며 외쳤죠. 그 청년은 제가 원하는 바를 이해했는지 나에게 다가와서는 갑자기 내 팔짱을 낍니다. 그러고는 “Go~!”라고 하며 씩 웃습니다. 약 20분 동안 그 청년은 내 팔짱을 끼고선, 그 먼 터미널까지 손수 나를 데려다 준 것입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왜 이렇게 친절한 거지? 저는 한국에서의 제 모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낯선 외국인이 도움을 청하면 그 청년처럼 친절히 도와준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는데… 선행이야말로 진리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그 청년처럼 사소한 친절조차 베풀지 못했는가?”
두 번째 사건. 터키 여행자면 반드시 가보는 ‘함맘(hammam)’이라는 공중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옷을 벗어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목욕탕 주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란 듯이 아무 곳이나 놓아두라고 합니다. 돈이 들어있는 옷을 함부로 바깥에 놓아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가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나 봅니다. 그 할아버지가 정색하며 말하길 “우리는 무슬림이다. 우리는 도둑질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기숙사 아침 신문이나 좀도둑질하는 한국 최고의 지성인보다 도둑질하지 않는 이 순수한 할아버지가 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슬림? 무슬림이 뭐지?” 후에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터키 청년, 그리고 도둑질하지 않는 할아버지. 선행을 실천하는 그들이 나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 왜 그들은 나보다 더 좋은 자들인가? 혹시 그들의 종교 ‘이슬람’이 그들을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세 번째 사건. 이란에서의 일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란 대학생의 기숙사에 초대받았을 때 저는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데, 여행 경비가 한정되어 있어 고민된다. 그들을 도와주면 내 이란 여행이 짧아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친구는 어떤 책을 펼치더니 나에게 “이 책 속에 진리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길, 자선은 우선 너 자신부터 돕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너부터 돕고, 그 다음에 네 가족, 다음에 친척, 이웃들에게 베풀어라. 우선 너는 돈이 없는 여행자니 돈을 아끼고, 한국에 돌아가면 그 때 남을 도와주어라.” 저는 속으로 “참 실용적인 책이다. 남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그 순서도 나와 있다니…많이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성경에서는 그런 구절이 없던 것 같은데…한국 가면 꼭 이 책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가 가르쳐주길 이 책의 이름은 ‘꾸란’이었습니다.
2개월의 여행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곧장 이슬람 성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꾸란이 이슬람의 성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슬람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종교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세계역사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이슬람은 ‘마호메트가 창시한 알라신의 종교’인데 말입니다. 수천 명의 신 중에 ‘알라’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높은 신을 섬기는, 힌두교와 비슷한 다신교가 이슬람 아니었던가요? 기독교 말고는 하나님의 종교가 없는 줄 알았는데…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마지막 종교가 이슬람이라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저는 이슬람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은, 제가 기독교에서 품었던 의문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자 하나님의 예언자다. 삼위일체는 허구이며,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원죄는 없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짊어지며 타인의 짐을 감당하지 않는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간단명료하면서도 이치에 맞는 아름다운 메시지들입니다. 또한 제가 추구하던 진리의 덕목인 정직, 성실, 정의, 선행 그 모든 것이 이슬람의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평화가 그분에게) 이후의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그분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는 꾸란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셨고, 따라서 인간에게 ‘현세와 내세를 조화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방정식’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완벽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 예언자의 쉽고 명쾌한 생활 속 해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 3개월의 공부 끝에 저는 이슬람으로 입교하였습니다. 9년이 지난 현재도, 저는 제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에 한껏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커다란 선물에 더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무슬림으로 임종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고 제가 천국의 거주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진리로 인도하여 주셨듯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여러분께 전합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찾고 있는 진리가 바로 이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