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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의 특성

장후세인 2021. 10. 6. 10:04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순종'평화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승화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유일신인 '알라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통해 몸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이슬람의 종교적 신조로 굳어졌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은 알라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복종자,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슬람교와 같은 보편종교는 대체로 종교의 창시자(불교와 기독교)나 종교의 소속 지명이나 인종명(유대교와 힌두교)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관례를 벗어나 종교의 고유이념인 순종과 평화의 뜻을 그대로 담 이슬람으로 명명한다고 경전 '꾸란은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흔히 서양에서 부르는 '마호메트(무함마드)니 동양에서 쓰는 회교(回敎)’니 하는 이름은 적절치 않으므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문명이 번갈아 출몰했다. 슈펭글러나 토인비 같은 문명론자는 한 문명의 가장 이상적인 존속기간을 1000년으로 잡으면서 이슬람문명을 가장 역동적인 문명으로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문명은 이미 1400여 년이나 존속되어 나름의 값어치를 과시해 왔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대안문명으로도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미래론자들은 이슬람문명을 21세기에 있으리라고 보는 이른바 문명충돌의 주범으로 지레 짐작하고 크게 경계하고 있다.

 

이슬람문명의 권역인 이슬람문명권(이슬람세계)이란 이슬람문명을 공동으로 창조하고 향유하는 범지역적 문명공동체로서 주민의 과반수가 무슬림(이슬람 신봉자)인 나라와 지역이 이에 속한다. 이슬람문명권은 대체로 이슬람의 발상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원심(圓心)으로 하여 동서로 활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권내 성원들은 지정학적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 이슬람문명권은 이슬람이란 특정 종교를 공통분모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고유의 종교적·정치적·사회적 및 문화적 양상을 짙게 가지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이 지리적으로 서로 밀접히 연결됨으로써 집중성을 나타내는 것이 여타 문명권과 다른 특징이다.

 

이슬람문명은 7세기 초반 이슬람교의 출현과 함께 형성되었다. 선지자 무함마드(570 ~ 632)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622)한 후 이슬람공동체(움마)가 건설되고, 그의 사후 정통 칼리파시대(632~661)에 전개된 대정복으로 인해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그 주변국들이 점차 이슬람화 함으로써 이슬람문명권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피정복지에 대한 아랍-무슬림들의 지배권이 확립된 아랍제국시대(우마위야조, 661~750)를 거쳐 아랍인과 비아랍인이 이슬람교와 이슬람문명이라는 공통된 이념에 기초하여 하나의 통일된 이슬람제국(압바스조)을 건설한 시기는 범지역적인 문명공동체로서 이슬람문명권이 형성된 시기다. 13세기 중엽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압바스조가 붕괴된 후 중앙집권적인 통일 이슬람제국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슬람교의 부단한 전파와 더불어 도처에 이슬람국가들이 자립함으로써 이슬람문명권은 그만큼 확대되어 갔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슬람문명권은 명실상부한 범세계적인 문명권의 위상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흔히 이슬람 하면 아랍이나 중동을 연상하는데, 기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이슬람문명권 내에 속한 무슬림의 수는 세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8억으로, 세계 5대주 6대양 200여 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중 주민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나라만도 58여 개국인데, 이 나라들이 바로 이슬람문명권(이슬람세계)을 이루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등 사회생활의 전반, 즉 문명의 제 영역을 총망라한 인간의 생존양식이며 종교와 세속 쌍방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이다.

 

종교라고 하면 대저 세속의 삶보다 내세를 더 강조하고 인간생활의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는 데 반해, 이슬람은 내세와 똑같이, 아니, 어떻게 보면 현세의 삶을 더 중시하면서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 대한 고유 이념과 원리, 제도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여타 종교나 종교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슬람만의 독특한 점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2대 고대문명을 요람으로 하여 태어난 이슬람문명은 아랍의 전통문명과 고대 오리엔트문명, 그리스-로마문명, 페르시아문명 등 여러 외래문명이 융화되어 창출된 새로운 문명으로서 다방면의 문명 영역을 갈무리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여러 문명을 단순하게 계승하고 융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시대적 요청에 맞게 가일층 발전시켜 특유의 중세문화를 꽃피움으로써 고대문명과 근대문명을 순리적으로 이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문명의 가장 큰 세계사적 공헌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사적 공헌 때문에 우리는 이슬람문명을 통해 사라진 고대문명을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문명을 비롯해 생존하는 근·현대문명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문명을 잉태하고 출산해 키워낸 요람은 이른바 고대 4대 문명 중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 즉 오리엔트문명이다. 그리하여 이슬람문명에는 이 두 문명이 남겨놓은 흔적이 역력하며, 그러한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여명을 밝힌 오리엔트문명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다.

 

 

문명사에서 이슬람의 기능과 영향력은 유럽문명의 사활이 걸린 일련의 문제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원래 선사시대의 몽매에 허덕이던 지중해 중심의 유럽은 고대 오리엔트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문명시대로 나아가게 되었고, 이른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문명이 싹텄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고대 오리엔트문명을 그들의 문명사 첫머리에 억지로 앉혀놓는 것이다.

 

한편 이슬람은 출현과 더불어 그리스-로마문명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문명으로 융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럽의 말살로부터 보존하고 발전시켜 중세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재수출함으로써 자칫 영영 멸적될 뻔한 유럽의 고전문명을 다행히도 르네상스(renaissance, 재탄생, 부흥)시켰던 것이다.

 

유럽에서 중세암흑기가 엄습하여 일세를 풍미하던 그리스-로마문명이 한창 내동댕이쳐지던 7~8세기부터 무슬림들은 그리스-로마 문명으로부터 철학, 학문, 기술을 닥치는 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서, 스트라본의 지리서 등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은 빠짐없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외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을 살찌운 이슬람 선진문명은 13세기를 전후하여 빈혈에 허덕이던 유럽에 수혈되기 시작했다. 아랍어 서적들이 라틴어로 역출되고 이슬람 지리학이나 천문학, 의학이나 수학이 유럽 대학에서 교재로 읽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은 바야흐로 잃었던 문명의 전통을 되찾기 시작했으며, 그를 발판으로 하여 르네상스의 전기를 맞았다. 급기야는 근세의 선기(先機)를 잡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럽사의 서술체계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으로 이슬람사회가 이른바 유럽 중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둔갑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중세 유럽문명에 대한 이슬람의 기여와 영향을 방증해주며, 이슬람문명을 떠나서 유럽의 중세 문명, 특히 그 부흥을 말할 수 없음을 웅변적으로 설파한다.

 

이슬람은 동서문명의 교류에도 특출한 기여를 했다. 지정학적으로 이슬람세계의 심장부는 동서양의 중간지대, 완충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동서문명 교류의 가교 구실뿐만 아니라, 문명의 산파역(産婆役)까지 맡았다. 일찍이 이슬람문명의 요람인 서아시아 일원은 페르시아문명을 비롯한 오리엔트문명과 그리스-로마문명이 접합(接合)하는 곳이어서 여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동서문명을 한 그릇에 담아낸 헬레니즘문화가 꽃피었다.

 

중세에 와서 이슬람제국은 동방의 중화제국과 함께 세계사의 쌍벽을 이루어 동서문명 교류의 주역을 담당했다. 이슬람제국은 중국을 비롯한 동방의 문물을 적극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후진 유럽에 그대로 전파하기도 했다. 인도가 발견한 영(, zero) 개념을 받아들여서 수학의 혁명을 일으킨 무슬림들은 영을 포함한 숫자(소위 아라비아숫자)를 유럽인들에게 가르쳐주었으며 중국의 4대 발명품을 비롯한 동방 특산물 대부분이 아랍-무슬림들의 손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8세기 말경에 중국의 채후지(蔡侯紙)를 받아들인 아랍인들은 바그다드지다마스커스지니 하는 따위의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함으로써 유럽인들은 12세기 중반부터 문명 발달의 척도라고 하는 종이를 알게 되었다. 중국의 목판인쇄술은 13~14세기 몽골제국 치하의 이슬람 일칸국(현 이란)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으며, 중국의 화약과 화기(火器) 제조법은 13세기 중엽 몽골군의 서정(西征)을 계기로 아랍세계에 유입되어 마드파아같은 아랍식 화포(火砲)가 제작되었다.

 

한편 유럽인들은 13세기 말엽부터 아랍인들로부터 화약과 화기제조법을 전수 받았다. 중국 북송 때에 만들어진 항해용 나침반도 13세기 말경 아랍에 전해진 후 곧바로 유럽에 알려져서 14세기 초에 이탈리아는 중국 나침반을 개량한 한침반(旱鍼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중세 아랍-무슬림들은 동방문명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문명을 가일층 풍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럽에 전달하는 문명중개자 노릇도 수행했다.

 

·현대에 와서 이슬람세계의 중심부인 중동은 시종 서구 열강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다. 그것은 중동을 다스리면 세계를 다스린다라는 역사적 경험이 그들에게는 한낱 불변의 명증(明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한 후 한때 세간에는 중동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번지기도 했다. 새 세기를 맞은 오늘 이슬람의 새로운 부흥이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슬람은 인류 보편사의 전개에서 시종일관 중요한 일익을 담당해 왔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는 세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슬람을 알아야 할 보편타당한 필요성이다.

                                                     <본 내용은 정수일, 이슬람 문명, 창작과비평사, 2002’에서 부분 발췌했음.>

 

 

 

이슬람 문명의 특성

 

1. 이슬람 문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알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신앙, 통치, 예술,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남. 다신론(多神論)을 암시하는 모든 행위를 금함.

 

*인간이 유일한 신앙에 따라 생각하고 살게 된다. 이슬람문명은 계시의 문명또는 꾸란문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2. 이슬람문명은 이슬람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관을 중요시 한다. 특정 국가나 사회 또는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3. 이슬람 문명은 과학의 발전을 추구한다.

아래의 학교나 연구소의 설립이 이를 증명한다.

이집트의 알 아즈하르대학교 (975년 설립): 천문학, 공학 및 의학

모로코의 까라위인(Qarawiyyin) 대학교(859년 설립): 문법, 수사학, 논리학 및 수학과 천문학, 역사, 지리 및 화학 등

튀니지의 자이투나대학교(731년 설립): 꾸란과이슬람법 외에도 문법, 수학, 천문학과 의학

스페인의 코르도바 대학교(785년 설립):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학생이 함께 공부했음. 기독교인 교수도 강의하였다.

 

이리하여 무슬림 학자들의 많은 저서들이 번역되었고, 이것은 12-13세기에 세워진 유럽 초기 대학들(몽펠리에(프랑스 1289), 볼로냐(1088년 유럽의 최초의 대학), 파리(12세기 후반), 옥스퍼드(11세기) )의 학문적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4. 이슬람 문명은 정복당한 지역사람들의 종교나 신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존중하였다. 또한 다른 신앙을 언급할 때 우리(무슬림)와 신앙이 다르다고 말하며 그들의 신앙이 틀리다고 하지 않았다.

이슬람국가들에는 이슬람성원과 함께 교회, 성당, 절 등 다른 종교의 예배당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말이 거짓임을 증거한다.

 

 

5. 이슬람문명은 인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명이다. 모든 것은 인간의 행복과 자유, 그리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슬람문명은 노예들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였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권장했다. 그 결과 노예제도는 완전 폐지되지는 않았으나 노예들은 금전적인 것을 통하여 자유의 몸이 되므로써 결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선지자 무함마드(SAW)께서는 노예의 아들을 군대를 이끄는 장군으로 보내신 적이 있었고, 최초의 무앗진(예배시간을 알린 사람)이 에티오피아 출신 노예였다.

 

6. 이슬람 문명은 어느 한 민족이나 지역의 특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랍, 터키, 페르시아와 다른 민족들 모두의 특성이 혼합되어 이루어졌다.

 

7. 이슬람문명에는 극단적인 금욕행위나 수도생활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간주한다. , 알라께서 금지하신 것 외에 모든 것이 허락된다.

 

8. 이슬람 문명은 제국주의 특성을 갖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자원을 소유하기 위해 즉,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한다.

 

9. 이슬람문명에서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 정신적 물질적 특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슬람은 개인을 무시하는 공산주의도 아니고 사회를 무시하는 개인중심주의도 아니다. 알라의 법 하에 모두가 올바르고 행복하도록 이끄는 삶의 방법이다. 이슬람은 원죄라는 개념을 거부하며 모든 사람이 죄없이 순수하게 태어남을 만한다.

 

 

10. 이슬람 문명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본다. 주인-노예, 부자-가난한 사람, 사장-근로자, 흑인-백인 등 사람을 분리구별하는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사회적 계급제도는 이슬람문명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다음은 이슬람이 사람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변해보았는지에 대한 한 예이다.

 

무슬림들이 최초로 행한 이주는 기독교 국가였던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였다. 그들의 보호 요청을 받은 네구스(Negus) 왕은 그들을 받아들였다. 네구스 왕이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묻자 그들을 대표한 자이파르 븐 아비 탈립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왕이시여! 과거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며, 죽은 동물의 살을 먹고, 추악한 일들을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또 친족들 돌보기를 게을리 하고, 이웃에게 죄를 저지르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알라(하나님)께서 우리 중 한 명을 선지자로 선택하여 그분의 말씀을 보내셨는데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 믿음직한 성품은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불러 모아 유일하신 알라(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우리와 우리 선조들이 일삼던 우상 숭배를 그만둘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실한 말을 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족과 친족들을 보살피고, 이웃을 친절히 대하며, 피를 먹거나 부정한 음식을 섭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행동이나 거짓된 말을 금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알라(하나님)만을 믿고 알라(하나님)와 대등한 존재를 두지 말며, 예배를 드리고, 희사를 하며 단식을 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진실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를 믿고, 그가 전하는 알라(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지역 사람들은 우리를 박해하고 고문하면서 우리의 종교를 포기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박해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귀하의 나라로 온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왕이 재촉하였습니다.

신에 의해 너희의 선지자에게 내려졌다는 그 계시의 일부를 말해 보아라.’

이에 대답하여 자으파르는 손지자 요한과 예수의 이야기가 담긴 꾸란의 마리아 (19)장 첫 부분(1-40)을 송독하였다. 그것을 들으면서 왕은 눈물을 흘렸다. 자으파르의 송독이 끝났을 때 왕은 말했다.

실로 이 계시와 예수님의 메시지는 거의 모두가 같은 근거에서 나왔다. 신께 맹세하건대, 나는 여러분을 그 사람들(메카의 꾸라이쉬 부족)의 손에 넘기지 않을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