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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여성을 가장 존중하는 종교(힌두교 ➡ 이슬람입교)

장후세인 2013. 4. 7. 15:10

                                                                                                                                     -젠나무민북스에서 발행된 "이슬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여자란 결혼하여 아이들을 갖고 무조건 남편을 섬기는 존재라고 늘 가르침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여성을 억압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예로 여성이 과부가 되면 언제나 흰색의 사리 옷을 입고, 채식을 하며, 머리를 짧게 깎고, 결코 재혼을 해서는 안 된다. 신부는 항상 지참금을 남편의 가족에게 지불해야만 하고 남편은 신부가 그것을 지불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무엇이나 요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 여자가 지참금을 완전히 지불할 수 없으면 그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문을 당하고 시어머니나 남편 모두가 그녀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동안 부엌에 불을 질러 죽도록 하는 “부엌 죽음”의 희생물로 끝날 수도 있다. 그 죽음은 마치 사고사인 것처럼 위장된다. 점점 더 많은 이와 같은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힌두교에서 남성들은 문자 그대로 신들 중의 한 명으로 취급된다. 힌두교의 종교 의식들 중 하나에서 결혼하지 않은 소녀들은 특별한 신인 ‘시라(Shear)’를 상징하는 우상을 숭배하여 그들이 시라와 같은 남편들을 갖게 되기를 염원한다. 나의 어머니도 내가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미신들이며, 명확한 증거없이 단지 여성들을 억압하는 전통에 불과하며, 그런 전통을 내포한 힌두교가 올바른 종교일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생겼다.

 

공부를 위해 영국에 갔을 때 나는 적어도 이 나라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며 여성은 억압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술집, 클럽 같은 곳을 다니면서 나는 평등이란 것이 이론만큼 실제에 있어서도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외적으로는 여성에게 교육과 직업 등에 대하여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여성은 미묘하게 여전히 억압받고 있었다. 나는 곧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불편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치장해야 했고 내 삶의 방식 또한 그들의 구미에 맞고 유별나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영국생활에 점점 더 불편함을 느꼈고 더 이상 내 자신이라는 존재가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거기서 헤어 나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즐거워보였지만 나는 그러한 삶에서 전혀 즐거움과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했다.

 

서양의 사회 역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 그들은 영혼의 아름다움보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더 신경 써야만 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억압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왜 자신이 불행한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힘든 삶의 기간 동안 비록 몇 명의 무슬림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나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 행복과 안정을 주며 스스로가 존중받을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만 함을 절실히 느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념과 믿음에 따라 살아간다. 오늘날의 사회는 어떤 신념과 가치가 진정으로 옳고 그른지에 대하여 모호한 판단을 내린다. 소위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다는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 친구를 가지고 처녀가 아니기를 기대 받는다. 그러한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사회가 정한 수준에서 미달인 것이다. 이것은 비록 일부 여성들이 감지하지 못하지만 일종의 ‘억압’인 셈이다. 

 

이슬람을 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영원한 안정을 찾았음을 깨달았다. 이슬람은 삶의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분명한 종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의 여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가리고 있고 그 어떤 자유나 권리도 부여되지 않는 억압의 종교라는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서구 사회와 다른 일부의 사회들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허용된 여러 권리를 이슬람의 여성들은 1,400년 동안 누려왔다. 반면 힌두교의 여성과 관련하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도 여성들이 억압받고 있는 사회들이 존재한다. 무슬림 여성은 상속권을 가지며 자신의 사업을 할 권리를 가진다. 남편에게는 없는 소유권, 재산권, 재산 처부권을 가진다. 교육받을 권리, 결혼을 거부할 권리 또한 가진다. 알라의 말씀인 꾸란에서도 많은 구절들을 통하여 남성들로 하여금 아내들을 친절하게 대하도록 명령하고 있으며 여성의 권리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은 올바른 규칙들의 집합이다. 왜냐하면 그 규칙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알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완벽한 종교이다.

 

아주 많이 무슬림 여성들은 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가리느냐 이것은 억압이다라는 질문과 비판을 듣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슬람에서 결혼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며 사회를 형성하는 가정이라는 기본체제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자신을 누구에게나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 오직 가정 내에서만 드러낸다. 남편 또한 신체의 어떤 부분을 아내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가정을 지키고 부부애를 강하게 하기 위해 알라께서 마련해주신 완전한 법이다. 꾸란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그들의 정숙을 위하여 몸을 가리라고 언급한다.

오,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들과 그대의 딸들과 믿는 자들의 여성들에게 그녀들의 넓은 옷자락의 일부를 내리어 그녀들의 몸을 가리라고 말하라. 이것이, 그녀들이 알려지게 되어 해를 입지 않음에 더 가까운 것이니라. 그리고 알라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분이시며 가장 자애로우신 분이시니라.” (33:59)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경우에 성희롱이나 여성들을 공격하는 악행들은 여성들의 옷차림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끔찍한 경험을 당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옷차림이 그러한 일을 유발시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슬람에서 제정된 규칙들과 규율들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남녀 모두를 위하여 남녀가 무분별하게 함께 있는 것은 금지된다. 알라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옳고 건전하며, 순수하고 인류에게 이로운 것이다. 꾸란의 다음 구절이 이 개념을 분명히 설명한다.

“(오, 무함마드여!) 믿는 남성들에게 그들의 시선을 낮추고 그들의 순결을 지키라고 말하라. 이것이 그들에게 더 깨끗한 것이니라. 실로 알라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에 가장 밝으신 분이노라. 그리고 (오, 무함마드여!) 믿는 여성들에게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그녀들의 순결을 지키며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하라.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제외니라…” (24:30-31)

 

히잡을 썼을 때에 나는 정말 행복하다. 내가 알라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그와 더불어 마음에서 생기는 축복에 행복해 하며, 안전하고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사실상 사람들은 히잡을 쓴 나를 그렇지 않았던 때 보다 더 존경한다. 무슬림이 된 후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서 행동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맹목적으로 또는 그 어떤 강요에 의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다. 꾸란에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느니라.(2:256)라는 말씀이 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이슬람은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슬람은 여성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경을 받도록 해준다. 이슬람은 알라께서 전 인류를 위하여 마련하신 종교이다.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한 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고 착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된다.